신행상담
나눔터 > 신행상담
생 과 사 덧글 0 | 조회 869 | 2010-02-08 00:00:00
sungaksa  
























제목 영가천도(2) - (1) 죽음 뒤의 세상
작성자 선각사 작성일 2009년 10월 30일
조회수 비밀번호
내용

(1) 죽음 뒤의 세상

① 죽음과 불생불멸(不生不滅)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바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


부처님께서는 그 좋은 태자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큰 도를 이루기위해 출가하셨다.

왜? 그토록 행복을 누리며 살았던 태자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출가하신 것인가?
그 분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맺힌 도저히 풀리지않는 그 무엇이 있었기때문에 출가하셨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아무리 잘 살아도 늙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호화스럽게 지내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황금덩어리가 모두 나에게 주어지고 명예와 권력이 쏟아져 들어온다해도 나는 결국 늙고
주는다. 늙고 죽는 나에게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싣달타 태자의 마음 속에는 늙고 죽는다는 문제가 칼날처럼 꽂혀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태자는
호화스러운 왕좌와 아름다운 부인과 귀여운 아들을 모두 버리고 죽음이 없는 도를 찾아 출가를
하셨다. 그리고, 피나는 수련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곧 안 죽는다[不死]는 도리를 깨달은
것이다.

정녕 죽음이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을 끝이요, 소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보면 죽음은 끝도


소멸도 아니다.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깐 이동하여 자취를 감춘 것에 불과하다.

육체라는 물건을 통하여 보고 듣고 움직이던 그 무엇이 육체를 떠나 숨어버린 것을 죽는다고 할 뿐,


 실제로는 죽는 것이 아니다[不死]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반열반의 그 날까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도리를 설파하셨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서 열반에 드시고서도 두 발을 관 밖으로 내어보이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아래에서 반열반에 드시자 사부대중이 힘을 모


아 부처님의 몸을 금으로 만든 관에 안치하고 다시 구리로 덧관을 만들어 모셔두었다.

부처님의 맏제자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먼 곳으로 가 있었기때문에 그가 돌아와 다비식을 거행할 것


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뒤 7일만에 가섭존자는 도착했고, 가섭존자는 부처님을 모셔놓은 관주위를


 세 바퀴 돌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 두꺼운 관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셨고, 이에 가섭존자가 정중


히 예배를 올렸다.

반열반에 드신지 이미 7일이나 지났거늘, 왜 부처님께서는 관 밖으로 두 발을 내어보이신 것일까?


분명히 죽었다면 완전히 끝이 나야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두 발을 내어보여 불사(不死)를 천명하신


 것이다. 안 죽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더욱이 이와 같은 일은 부처님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뒤에도 많은 선지식들이 불사(不死)의 도리를 보여주셨다.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도 그러했고 신라의 고승인 혜숙(惠宿)스님도 그러


하였으며, 약 40여년 전의 금포(金包)스님도 그러하였다.


 


② 죽음과 불생불멸(不生不滅) 


 


 


근대의 고승 금포(金包)스님이 입적(入寂)하시기 3년 전, 현재 김해 동림사에 계시는 화엄(華嚴)스님이 금포(金包)스님이 머무셨던 선산 대도사로 찾아갔다.

그 때 금포(金包)스님은 화엄(華嚴)스님께 질문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에게 세 곳에서 세 번 법을 전하였지. 화엄(華嚴)스님은 그것을 알고계신가?

예, 중인도(中印度) 비사리성의 다자탑(多子塔)앞에서 설법을 하시다가 늦게 도착한 가섭존자에게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신 것이 하나요,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시자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은 것이 그 둘이며, 사라쌍수(沙羅雙樹)에서 반열반에 드신 후 7일만에 도착한 가섭존자에게 두 발을 내어 보이신 것이 세 번째 입니다.

법은 한 곳에서 한 번만 전달해도 충분한데, 왜 부처님께서는 세 곳에서 세 번이나 법을 전하였는가? 한 번 일러 보시게.

화엄(華嚴)스님은 답을 하지 못하였고, 그 질문은 하나의 큰 충격이 되어 3년 동안을 밤낮없이 몰아쳐서 마침내 답을 얻었다.

됐다. 이제 금포노스님께로 가서 빚을 갚자.
답을 얻은 화엄스님은 환희심을 품고 금포(金包)스님을 찾았지만, 노스님은 입적(入寂)하신 지
이미 3일이 지나있었다.


하지만 화엄스님은 그냥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3년 전의 충격과 3년 동안의 공부가 너무나 컸기때문에, 죽은 시신이라도 보아야겠다며 억지를 써서 시신과 대면하게 되었다.

금포스님은 눈을 뜬 채로 누워 계셨고, 화엄스님은 그 앞에 앉아 말하였다.
스님, 3년 전에 제게 질문을 주셨듯이, 지금 다시 한 말씀 하십시오.
그러자 3일 전에 죽은 금포스님의 시신이 오른쪽 주먹을 들었다.


화엄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방법을 바꾸어 한 마디 더 하십시오.
이제 금포스님은 또 다시 오른쪽 주먹을 들어보이셨다.

분명히 죽은 3일 된 시신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쪽 주먹을 두 번 들었으니,


죽었다고 해야하는가?
살았다고 해야하는가?


이러한 불사(不死)의 도리는 부처님이나 달마대사, 금포스님 같은 분들께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 또한 모두가 불사(不死)의 테두리속에 있지만, 욕심과 분노와 눈앞의 일에 대한 집착에 빠져 우리들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안 죽는 그 자리를 잊고 사는 것이다.

우리의 부처님께서는 안 죽는다, 죽는 것이란 없다는 것을 체험하신 다음, 죽는다는 것이 중생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파하셨다. 인연따라 생겨난 모든 것은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기 마련이지만, 참된 나는 생겨나지 않았기에 멸하지않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죽지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실로 불교인은 스스로에게 죽지않는 참된 나가 있음을 깨달아,


그 참된 나의 주춧돌 위에서 살아야한다.
나는 영원히 죽지않는다.

이것이 확실히 믿어져야 부처님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고 부처님의 공덕과 고마움을 알 수 있게되며, 일상생활이 더할 수 없이 즐겁고 행복하고 흔들림없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③ 죽음 다음의 현실

이제 죽지 않는다는 명제 아래 죽은 다음에 발생하는 그릇된 삶에 대하여 논하여보자.
우리는 흔히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이 세상이라하고 죽은 다음에 있게될 곳을 저 세상이라고한다.
그리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은 다른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이 세상도 내가 살고 저 세상도 내가 사는 곳이다.
때가 되면 새 옷으로 바꾸어 입듯이, 이 세상은 헌 옷입은 내가 사는 곳이오,


저 세상은 새옷 입은 내가 사는 곳이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그 불사(不死)의 나가 현재로서 사는 곳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직 현재로서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현재의 지금 이 자리에서
열반(捏槃, Nirvana)의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한다.

열반의 원어인 니르바나는 불(vana)이 꺼진 상태(Nir)라는 뜻이다.


그 불은 어떠한 불인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활활 타오르는 번뇌의 불이다.


그 불길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우리는 잘 살수가 없다. 완전히 태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앙금과


그을음을 남기며 살아가게 된다.

누구든 지금 이 자리에서 참으로 잘 살고자하면, 번뇌가 아닌 향상(向上)의 원(願)속에서 삶을 완전히


 태워 뒤끝을 남기지 않아야한다. 그런데, 완전히 태우는 삶을 살지 못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속에서 죽음을 맞으면 새로운 현재에서 새 옷을 입지 못하고 지난 생의 테두리와 끄나풀에 결박되어


헌 옷을 입은 채 살아가게된다.

물질을 탐착했던 사람은 죽어서도 그 물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사랑에 너무 집착하면 그 사랑을 떠나가지 못한다.

분노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살아있을 때는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하면서 서로의 잘못을 가슴


속으로 삭이며 살아가지만, 숨이 끊어져 영(靈)이 몸뚱아리와 떨어지면, 내 자식, 내 남편이라는 생각


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살아 생전 가슴에 맺혔던 괘씸한 생각과 섭섭한 생각만이 남아서 그 당사자와


부딪히게 된다. 결코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바로 이것이 죽음 다음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있었던 다음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④ 부산 최씨 왕구두쇠 할아버지

부산에 살았던 최씨 할아버지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최씨로 왕구두쇠로
알려진 분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입고싶은 옷이 있어도
사 입지않았으며, 차 한잔 술 한잔 마시는 돈이 아까워 친구들조차도
만나지않았다. 그렇게 평생을 산 결과 늙으막에는 10억을 넘는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돈을 모으기만할 뿐 쓸 줄 모르는 것이 버릇이 되어, 마땅히
써야할 때도 쓰지않았다.

허름한 주택에 남루한 행색, 반찬없는 밥이 최씨 노인의 모습이었고,
동시에 아내와 자식들조차 가난을 강요당하며 살았다.


한 번은 사업을 하던 아들이 부도를 막기위해 아버지께 며칠만
돈을 빌려줄 것을 힘들여 청하였다.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이 놈아, 내 돈이 어떤 돈인지 모르느냐? 배고플 때 허리띠를
졸라매고, 추울 때 벌벌 떨면서 모은 돈이다. 그런데,너는 어떻게
했느냐?


네가 번 돈이라며 마음대로 써놓고 부도직전이라고 내 돈을 빌려
달라고 해?

이 놈아, 차라리 부도를 맞아라, 부도를 맞아.

아들은 아버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섭섭한 마음조차
갖지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 몇 년이 지나 노인은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고, 유족들은
그 분을 위해 49재를 올려드렸다.

그런데, 법사스님이 앉아 법문을 해야할 법상위에 시커먼 구렁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이는 15년전 부산의 조그만 암자에서 있었던 일이다. 너무나 돈을
아꼈던 최씨 할아버지는 살아 생전 자신이 모든 돈에 대한 집착때
문에 좋은 세상으로 떠나지못하고 업신(業身)인 먹구렁이가 되고
말았다.

돈은 잘 사는데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절약은 하되 필요할 때 돈을
쓸 줄 알아야하고, 특히 다른 이를 살리는 데는 기꺼이 쓸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최씨 할아버지는 돈에 대한 집착에 얽매여,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았고,
결국 스스로를 구렁이로 만들어 버렸다.

살아서나 숨이 끊어진 그 순간,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자신이 모은 돈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였기때문에 구렁이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몸을 바꿀 때는 생각을 잘 정리하여,
기꺼이 놓고 갈 줄 알아야한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병을 만들고 바르게 나아갈 길을 막아버린다.
반대로 기꺼이 놓고가면 새로운 빛의 길이 열린다. 생각따라 현실이 바뀌는 것이다.
또 한가지 못 다한 사랑의 이야기를 해보자.


 


⑤ 서상면의 한 청년 이야기



현재 70여세된 일미(一味)스님께서 40년 전 경남 함양군 서상면 덕유산 영각사 주지로 계실 때
경험한 일이다.

당시 서상면의 한 청년이 실성을 하여 밤낮없이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다.
스님이 마을사람들에게 까닭을 물었더니 자살한 누나 귀신이 붙어 저렇게 되었다며
자세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누나와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매우 다정하였을 뿐 아니라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남동생이 일하면 누나가 거들고 누나가 심부름을 가면 남동생도 따라가는 등
어찌나 정답게 지내는지 온 동네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하였다.

저 집 남매는 칼로 베어 갈라놓으려 해도 안 된다.
그러나 누나도 동생도 점점 자라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집안에서 혼사를 서두르자 남동생 이외에는 어떤 남자와도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누나가 자살을 해버렸다.


누나는 남동생을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 생각하고 남동생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하였지만,
현실이 용납하지 않아 자살을 한 것이었다.

귀신이 된 누나는 매일매일 남동생을 찾아와 뽀뽀를 요구하고 육체관계를 요구했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가릴 것 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남동생을 끌고 다녔다.


그런데 묘한 것은, 험하디 험한 덕유산을 밤새도록 헤매다 돌아오는데도
아스팔트길을 거닐다가 온 것처럼 손등 발등에 긁힌 자국 하나 없고,
옷도 집을 나설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남동생은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헛소리처럼 말하였다.
싫어 싫어, 누나가 자꾸 뽀뽀하자고 해.
어떻게 누나하고 뽀뽀를 해? 나는 싫어. 누나와 뽀뽀하기 싫어.


하지만 누나 귀신이 와서 붙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일미스님은 그 착하고 가난한 집안 사람들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7일 기도 끝에 음식을 차려 놓고 마지막 천도재를 지내던 스님은 참으로
힘든 경우에 처하고 말았다.

갑자기 제사상에 차려 놓은 음식 그릇이 마구잡이로 뛰고 제멋대로 춤을 추는 것이었다.
누나 귀신의 못 간다는 반항의 표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향로와 다기와 촛대가 굴러 떨어지면서
향로의 재가 쏟아지고 다기의 물이 법당 바닥을 적셨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향로와 다기를 손으로 쳐서 넘어뜨린 듯하여 등골이 오싹하였지만
일미스님은 잘 마무리를 하였고, 그 결과 남동생은 완전히 본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였다.

한 가지 이야기를 곁들인다면, 당시 영각사에는 어느 정도 신기(神氣)가 있는 보살이 공양주로 있었다. 그 공양주는 스님이 재를 지내는 동안 신장들이 여자 귀신을 법당 밖으로 끌어내려 하고
여자귀신은 법당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버티다가, 결국은 신장들에게 끌려 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사랑은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 그 자체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의 누나처럼 못 다한 사랑의 집념을 품고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못살게 구는 귀신이 되어버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언제나 함께 해야하고 나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애착이 지나치면, 오히려 상대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살릴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 누나 귀신은 자신의 못 다한 애욕을 풀기 위해 그 토록 사랑했던 동생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나락 속으로 몰고갔고, 자신 또한 신장들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서로를 살리는 사랑이 아니ㅏ 서로를 죽이는 사랑을 하고 만 것이다.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일평생을 사랑 속에서 사는 우리는 잘 명심해야한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애착, 잘못된 소원, 잘못된 생각이 죽어서까지 남을 괴롭히는 귀신이 되어 더한 업을 쌓게 만들고, 떠도는 영가가 되어 나자신을 복된 삶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⑥ 죽으면 맺힌 것만 남는다

이제 가슴속에 접고 사는 응어리에 대해 함께 새겨보자.
70년대에 지금은 쌍계사 조실스님이신 오고산스님이 조계사의
주지로 계실 때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조계사 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불사가 있을 때마다 시주를 많이 하는 50대의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은 고산스님께 전화를 하여 울면서 애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고산스님은 택시를 타고 급히 그 집으로 가서 현관 유리문을
통하여 집안을 살펴 보았다. 딸은 쓰러져 있고 부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십 가량된 남자가 쓰러져 있는 딸의 배 위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느낀 고산스님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그 남자가 딸의 배 위에서 슬쩍 내려앉았다. 고산스님은
그 앞에 앉아 기억하고 있던 진언들을 총동원하여 외웠고,
그렇게 30분 가량이 지나자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원결(怨結)이 있음이로구나
이렇게 확신한 고산스님은 부인에게 물었다.
보살님, 어떤 남자와 원수 맺은 일이 있습니까?
원수라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으나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조계사로 돌아와 그 부인의 친구 되는 보살들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통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합니다. 원한을 살
일이 없지요. 다만 한 사람, 착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었던
남편에게만은 병신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 모두
남편에게 퍼붓고......

성격이 남자 이상으로 활달했던 그 부인은 장사와 부동산
투기를 통하여 많은 돈을 만졌다. 그러나 부인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던 남편은 착하고 어질기만 할 뿐 활동적이지
못하였다.

무능한 남편이 되어 아내에게 얹혀 살자 부인은 차츰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어질고 착한 남편의 성품까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보요 병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자연히 부인은 남편을 끊임없이 구박하였고 욕설과 모독은
물론이요, 때로는 남편을 집 밖으로 내쫓기까지 하였다.

해가 가면 갈수록 부인의 패악이 심하여지자,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 때문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착한 남편의
마음속에도 아내에 대한 응어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아들없이 두 딸만 두었는데, 남편은 두 딸을
결혼시킨다음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자살을 하였다.

부인이 49재를 지내주기는 하였지만, 복수의 칼날만을
우뚝 세우고 있는 남편이 천도될 까닭이 없었다.
요 년!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다.


49재가 끝나자 남편의 복수극은 시작되었고, 그 첫번째
결행으로 큰 딸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자식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영(靈)이 큰딸에게 붙자 딸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부인은 큰 딸을 데리고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지만, 한결같이특별한 병이 없다는 말만
들려줄 뿐이었다.

이상과 같은 전후사정을 모두 알게 된 고산스님은 부인을
불러 물었다.


보살님, 영감님에게 잘못한 것이 있지요? 무릎 꿇고
참회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될 것입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무능하고 바보스런
남편때문에 내가 희생되었지, 그 사람이 손해본 것이 무엇입니까?
한평생을 희생한 것만도 억울한데 왜 제가 그 사람에게
무릎을 꿇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얼마 후 큰딸은 죽었고, 조계사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 끝에 고산스님이 조계사 탑 옆의 회나무가 있는 자리에
재를 지낸 음식을 놓고 옷도 태우러 갔더니, 그 남자가
나무 밑에 서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제삼자인 당신이 왜 이일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요?
당신이 끼어들면 내가 보복을 하지 않고 그만둘 것 같소?
천만에! 당신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너무나 독하게 퍼붓는 남자의 서슬에 고산스님의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았던
둘째딸이 언니와 똑같은 상황속에서 죽고 말았다.


병원에 가면 병이 없다고 하는 데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조이는 고통을 느끼며 죽은 것이다.

두 딸을 모두 잃은 부인은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다가 쌍계사로 갔다.


때마침 고산스님은 조계사 주지를 그만두고 쌍계사 주지를
맡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름 한 철을 쌍계사 선방에서 지내고자 하여 왔습니다.


영감님의 원결을 풀어주지 않아 두 딸까지 죽여놓고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참선은 무슨 참선이오?

왜 영감님의 원결은 풀어 줄 생각을 하지않습니까?
보살님이 살아 있을 때는 몰라도 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영감님이 달려들어 요년, 맛 좀 봐라며 쪼아붙일텐데......


스님, 정말 그럴까요?
절에 다니면서 인과(因果) 이야기를 많이도 들은 사람이 그
생각도 못합니까?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방 수행 대신, 법당에 남편 위패를 모셔 놓고
백일 지장기도를 하십시오. 법당에 예불하러 들어가도
부처님전에 절하고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잘못했다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참회하고
염불하십시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그날부터 부인은 2시간씩
하루 네차례 지장보살을 부르며 남편의 위패 앞에서
참회와 천도의 백일기도를 올렸다.

제가 어리석고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고 좋은 나라로 가십시오.


이 이야기 속의 남편은 살아 생전 자신을 학대한
아내의 가슴에 못을 치기 위해 딸부터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아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랑했던 두 딸을
죽여버렸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딸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있어 죽인 것이 아니었다.
아내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며 죽은 남편의 눈에는
이미 딸이 딸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아내를 괴롭히고
아내로 인해 쌓인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는 아내에게
슬픔을 안겨주어야하고, 그 최상의 방법이 아내가
가장 아끼는 딸을 죽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두 딸을 죽인 것이다.


이토록 원결(怨結)은 무서운 것이다. 부모.자식.부부 등
가깝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는 흔히들
나 편한 대로 하여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토록 편한 사이라도 응어리가 맺히면 인정사정이
없는 사이로 바뀌고 만다.

살아있을 때는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히더라도 체면도
갖추고 도리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억제하지만,